오늘 리뷰할 영화는 위플래쉬.
특정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영화.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화.
최고가 되어 성공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주는 영화.
원래 드럼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지만, 주변사람들이 위플래쉬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고 해서 보게 된 영화이다.
이 영화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서 말하자면,
"앤드류라는 드럼전공생이 플레쳐라는 교수를 만나 최고의 드러머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보면 정말 단순한 영화이지만,
실제로 관람을 해도 정말 단순한 내용을 가진 영화가 바로 위플래쉬다.
이렇게 단순하다고만 이야기를 해버리면 너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위플래쉬의 세 줄 감상평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1. 맹모삼천지교, 그리고 위플래쉬
옛 말에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무려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며 교육을 시켰다는 뜻"
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은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
라는 말로 해석하면 된다.
위플래쉬도 똑같다.
원래 앤드류는 그냥 드럼을 조금 잘 치는 드럼전공생이었지만,
최고의 음악 교수인 플레쳐를 만나서 드럼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다.
플레쳐는 앤드류에게 직접적으로 드럼치는 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단지 앤드류가 드럼을 더 잘 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갈뿐이다.
앤드류의 자존심을 팍팍 긁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뿐만 아니라, 심한 욕설도 마다하지 않는다.
즉,
"플레쳐는 앤드류에게 드럼 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드럼을 잘 치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위플래쉬에서 플레쳐가 앤드류에게 하는 행동들은 정말 보는 입장에서도 공포감이 확 느껴진다.
(아마 내가 위플래쉬의 앤드류였다면 그냥 포기했을 것이다.)
물론 플레쳐의 이와 같은 환경 조성만으로는 앤드류의 드럼실력이 향상될 수 없다.
앤드류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 하는 자세와 플레쳐의 채찍질이 만나 비로소 위플래쉬의 앤드류가 탄생하게 된다.
(실제로 위플래쉬의 뜻은 채찍질이다.)
whiplash = 채찍질
(이와 같은 위플래쉬의 뜻을 보면,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위플래쉬인지 한 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2. 플레쳐를 만나서 최고의 드러머 앤드류가 되기 vs 그냥 살기
사실 위플래쉬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난 저렇게는 절대 못해."
였다.
위플래쉬 초반부에 플레쳐가 앤드류의 잘못된 드럼 치는 모습을 보고 귀싸대기를 수없이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봤을 때에는 그렇게 잘못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템포를 조금 잘못 맞췄다고 19살의 앤드류의 볼때기를 아주 사정없이 갈긴다.
위플래쉬 영화를 보고 있는 나조차도 플레쳐의 이러한 행동에 공포를 느끼는데,
실제로 당하고 있는 앤드류는 어떤 공포를 느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이러한 귀싸대기를 수도 없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앤드류는 결국 꼬박꼬박 대답을 잘해서 극복을 하고 드럼실력을 엄청나게 성장시킬 수 있었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과연 앤드류는 행복했을까?"
물론 오로지 드럼실력 향상에만 목을 매었던 상황이라 행복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겠지만,
위플래쉬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앤드류의 이러한 모습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 친구인 니콜과 대학교 이야기를 할 때가 훨씬 더 행복해 보였고,
피를 흘리며 드럼을 지는 앤드류의 모습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플레쳐가 이렇게 앤드류를 몰아붙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영화 위플래쉬에서 플레쳐와 앤드류가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존스가 찰리 파커에게 심벌즈를 던지지 않았다면, 찰리 파커는 절대로 버드가 될 수 없었을 거야."
여기서 찰리 파커는 20세기의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실존인물)이며 존스는 파커와 함께 연주를 하는 드러머인데,
둘이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파커가 색소폰 연주를 너무 못해서 존스가 심벌즈를 집어던졌다는 이야기다.
즉, 존스가 파커에게 채찍질(위플래쉬)을 함으로써 파커는 버드(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의 별명)가 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이를 영화 위플래쉬에 적용하면,
"존스가 플레쳐이고 찰리 파커가 앤드류라는 말이다."
실제로 플레쳐는 앤드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내가 셰이퍼에서 뭘 하려고 했는지 아무도 몰라줬다는 게 아쉬워.
난 지휘를 한 게 아니야.
팔 휘젓고 박자 맞추는 건 칠푼이도 해.
너희가 한계를 넘어서는 걸 보고 싶었어.
난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
안 그럼 제2의 루이 암스트롱도 없고 찰리 파커도 없어."
"괜찮아 잘했어, 그만하면 잘했어."라고 했다면,
그럼 버드는 없었어.
그거야말로 엄청난 비극인 거야.
요즘은 그런 게 대세이니 재즈가 죽어갈 수밖에 없어.
지금 보면 당장 플레쳐를 갑질로 고소해야 하겠지만,
플레쳐의 이런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플래쉬를 보는 내내 앤드류가 인생을 살면서 느낄 수 있는 행복들(니콜과의 연애 등)을 포기하면서까지 드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의 서두에서 위플래쉬라는 영화가 드럼을 치는 단순한 내용을 가진 영화라고 언급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이 엄청나게 부풀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그 부풀 수 있는 내용은 누가 위플래쉬를 관람하느냐에 따라서 바뀔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위플래쉬를
'평범한 드럼 전공생이 뛰어난 교수를 만나 최고의 드러머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로 해석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위플래쉬를
'변태 같은 지휘자를 만나 인간의 영혼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로 해석할 수도 있다(출처 : 다음 영화 위플래쉬 네티즌 평점).
나는 위플래쉬를 보고 느낀 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싶다.
'최고가 되어 성공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는 큰 깨달음을 주는 영화.'
전적으로 내 생각이긴 하지만,
행복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복에 대한 관점으로 위플래쉬라는 영화의 한줄평을 낸 것 같다.
내가 위와 같은 영상을 제작하고, 행복하기 위해 사는 삶을 꿈꾸는 이유도 모두 행복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앤드류가 플레쳐의 지휘 하에 드럼을 칠 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앤드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꼈다면 끝이다.
어쩌다 보니 위플래쉬 리뷰가 이상한 행복 관련 리뷰로 변해버렸는데,
어쨌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은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여러 가지 영화들을 리뷰해 놓은 링크입니다.)
시간이 있다면 위플래쉬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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